말하기를 말하다(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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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언양 (토론 | 기여)님의 2020년 7월 8일 (수) 20:47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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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귀가 트이’고 ‘말문이 막히’듯, 말은 드나드는 속성을 지녔다. 나온 말은 ‘펀치 라인’이 되어 강력한 힘을 발휘하기도 하고, 주워 담을 수 없는 ‘말실수’가 되기도 한다. 나오지 않은 말은 가슴에 남아 한 사람의 신념이 되기도, 평생의 한이 되기도 한다. 지금 내겐 갑작스럽게 떠난 둘째 고양이 고로에게 미처 전하지 못한 말이 가슴에 남아 있다. 남은 말은 오히려 그를 그리는 구심점이 되니 말의 작용이 이토록 신묘하다. 수어를 포함하여, 말은 인간됨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이고 서로에게 가닿게 하는 소중한 기술이다. 그럼에도 우리 대부분이 한 번도 배우지 못했고 깊이 생각해보지 않았던 분야다. 이 책은 말하기라는 거대한 세계를 탐색하는 작지만 중요한 열쇠가 될 것이다. - 8쪽


옛날에는 학교 안의 활달한 나와 학교 밖의 주눅든 나 중에서 나만은 진짜 나를 알고 있다고 여겼지만, 이제는 정말로 잘 모르겠다. 어디까지가 배역이고 어디부터가 나인지. 항상 ‘’’’인생은 레벨 업이 아니라 스펙트럼을 넓히는 것이다.’’’’라고 믿는데, 옛날의 나보다 지금의 내가 더 레벨업한 버전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옛날의 나로부터 지금의 나까지를 모두 다 품은 내가 더 스펙트럼이 넓어졌다고는 할 수 있겠다. 그리고 더 넓어진 나야말로 더 나아진 나일지도 모른다. - 30~31쪽


성우 공부를 하면서 배운 것들 가운데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포즈(pause)’ 즉 ‘잠깐 멈춤’의 중요성이었다. 말의 매력과 집중도를 높이는 것은 이 ‘잠깐 멈춤’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달려 있었다. 이것은 너무도 중요한 기술이라 이 책을 읽는 여러분도 그에 대한 생각을 해보셨으면 좋겠다. 말을 매력적으로, 힘있게 하는 사람들이 어디서 말을 끊고 다시 이어가는지를 관찰해보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특히 법정 드라마의 변론 등을 유심히 들어보면 이해가 빠를 것이다. 최근에 나는 봉준호 감독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수상 소감을 말할 때 샤론 최의 동시통역과 함께 두 언어의 호흡을 어떻게 끊고 이어가는지를 관찰하며 또 많이 배웠다. 이 기술을 잘 사용하려면 기본적으로 문장 구조를 잘 이해해야 하고 본능적인 타이밍 감각도 필요하다. 그렇지만 분명 의식적인 노력을 통해 나아질 수 있는 기술이다.


뜬금없이 성우 공부를 했던 1년은 내 직업 인생에서 ‘잠깐 멈춤’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남들이 보기엔 곁길로 샌 것 같았겠지만 내겐 무척 중요한 1년이었다. 처음 만난 내게 대뜸 성우가 되어보라고 권했던 옛날의 그분께 문득 고마운 마음이 든다. 그분이 툭 건넨 말 한마디가 씨앗이 되어 내 안으로 들어오는 바람에 나는 이제 말하기 책을 쓰는 사람까지 되었으니까. 말의 힘이 이토록 크다. - 38쪽


그리고 꼭 교과과정에 있었으면 하는 것이 있다.바로 말하기다. 그때 매일매일 이런 생각을 했다. 어째서 20대 후반인 지금까지 말하기 교육을 단 한 번도 받지 않았던 거지? 이렇게나 중요한 것을. 연습하면 이렇게나 나아지는 것을. 걷기나 자전거 교육이 필요하다고 느끼는 이유는 아무 생각 없이 걷고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을 많이 마주치기 때문인데, 마찬가지로 말하기에 대해 아무 생각이 없는 사람들도 수없이 많다. 그저 말재주가 없어서, 또는 성격이 소심해서 말을 웅얼거리고 제대로 구사하지 못하는 것을 가리키는 게 아니다. 안 좋은 말하기 습관을 많이 갖고 있거나 말하기의 중요성을 전혀 인지하지 못하는 사람들에 대한 얘기다. 말하기 교육을 받기 전까지 나라고 달랐을 것 같지 않다.

(중략)

우리는 정말로 말을 별생각 없이 한다. 인간 종에게 큰 선물이기도 한, 가장 구체적이고 효율적으로 발달한 커뮤니케이션 도구인 말을 사용하는 문제에 대해 우리는 좀더 배우고 생각해야 할 것 같다. 말하기에는 발성, 속도, 억양, 크기, 높낮이, 호흡, 포즈, 어휘, 어법, 습관, 태도, 제스처 등등 수많은 요소가 복합적으로 쓰인다. 거울을 보면서 더 나은 표정을 지어보거나 매일 스킨 로션을 바르고 뾰루지가 나면 연고를 바르듯이, 말하기도 어떻게 하면 더 효율적이고 아름다워질지 고미해보거나 안 좋은 습관을 고치려고 신경을 쓰면 좋지 않을까?

(중략)

어떤 사람은 발성이 좋고, 어떤 사람은 상대를 편안하게 해준다. 어떤 사람은 너무 말이 빠르고, 어떤 사람은 자꾸 말끝을 흐린다. 이 책을 읽는 분들이라면 앞으로 방송에서든 일상에서든, 사람들의 말하기를 들으며 어떤 말소리가 좋게 들리는지, 어떤 말소리가 거슬리는지 한번 관찰해보면 좋을 것이다. 매일 거울을 들여다보는 것처럼, 그렇게만 해도 우리의 말하기는 매일 나아진다. ‘’’더 직접적인 거울을 사용하면 말하기는 비약적으로 좋아지는데, 그것은 자기 말소리를 녹음해서 들어보는 일이다.’’’


내가 먼저 상대에게 마음을 열고 매너를 갖추어 말을 걸면 상대 또한 잠시나마 자신의 세계를 내게 보여주었다.나는 그러부터 반년 동안 아르헨티나, 칠레, 페루, 볼리비아, 브라질, 모로코, 스페인을 거쳤다. 인도인 비즈니스맨 아저씨를 필두로 수없이 많은 사람에게 말을 걸었다. 이때 언어가 통하느냐 아니냐는 부차적인 문제다. 중요한 것은 상대에게 마음을 열려는 태도다. 미리 재단하려는 마음 없이. 여기서 세계를 파악하려는 두 태도의 차이를 읽을 수 있다. 즉 세계를 화분들의 집합으로 파악하느냐, 아니면 하나의 거대한 숲으로 이해하느냐. 좁은 화분을 벗어나 울창한 숲으로 나아가려면 우선 내 마음이라는 화분부터 깨버려야 할 것이다.먼저 말을 거는 사람이 된다는 건 내게 그런 의미였다. - 53~5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