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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는 선동열(책)

18,251 바이트 추가됨, 2020년 5월 5일 (화) 17:49
7. 일본으로 진출하다
{{책
|제목=야구는 선동열 - 자신만의 공으로 승부하라
|원제=상동
|저자=선동열
|옮긴이=없음
|출판사=민음인
|출간일=2019.10.22
|쪽수=400
|ISBN13=9791158885861
|ISBN=1158885865
}}
 
[[파일:야구는선동열표지.jpeg|300px|프레임|야구는 선동열 - 자신만의 공으로 승부하라]]
== 머리말 | 나는 오늘도 마운드에 오른다 ==
=== 7. 일본으로 진출하다 ===
* 하지만 역시 FA제도는 그때까지도 존재하지 안ㅇ핬고않았고, 선수들에게는 일종의 '노예계약'에 가까운 '보유선수조항'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었다. 한번 프로 구단에 입단하면 평생 그 구단 소속이 되어야 하고, 구단이 동의하지 않는 이상은 해외 진출이나 국내 트레이드조차도 불가능한, 지금 생각하면 악법 중의 악법이었다. 그래서 미국 진출이 어려웠던 것처럼 일본 진출 또한 쉽지 않겠다는 생각은 늘 하고 살았다. 그럼에도 어느 순간부터인가 좀 더 넓은 리그에 가서 좀 더 모험적으로 나를 시험해 보고 싶고,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서서히 강해지고만 있었다.
* 내 인생의 플랜 A는 메이저리그였다. 하지만 1980년대 당시 군부독재와 정보정치의 가혹한 현실, 한국 남자라면 당연히 이행해야 하는 병역 의무, 거기다 광주민주화운동으로 상처 입은 고향 시민들의 아픔과 슬픔을 달래야 하는 여러 현실이 끝내 나를 플랜 A로 이끌지 못했다. 그래도 나에겐 플랜 B가 남아 있었다. 일본 프로야구 진출이었다. 플랜 A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플랜 B라는 기쁨과 영광이 드디어 내게 안겨진 것이었다. 정말 기뻤고 영광이었다.
==== - 나의 좌우명, ‘원칙’ ====
 
* 고백건대 내게도 정치적 유혹이 많았다. 하지만 나는 잠시도 흔들리지 않았다. 나를 이른바 정치판의 병풍으로 세우려는 시도도 수백 번 있었다. (중략) 사실 이런 유혹으로부터 자유롭기가 쉽지는 않았다. 나도 한국 사회의 네트워크 속에서 살아왔기 때문에 제안을 거절하기가 참 민망했다. 그럼에도 나를 지키기 위해 노력했다. 늘 차분해져야 했다. 나는 아직까지는 '순수한 야구인'으로 살아가고 있다. (중략) 나는 야구와 야구를 둘러싼 몇몇 부분에 대해서는 나름대로 경험을 가지고 있지만, 그 이상은 아니다. 그래서 나는 스스로 분수를 생각한다. 그리고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이 나의 원칙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야구인으로 태어나 야구인으로서의 인생을 살고 있다. 나는 아직도 그라운드에서 절차탁마해야 할 일이 남아 있다.
 
* 나는 직구를 던지는, 그런 기본적인 삶, 야구인으로서 살아갈 마지막 날까지 유지하고 싶다. 그래서 나는 초구도 직구였고 마지막 승부구도, 마지막 결정구도 직구일 것이다. 이 말을 좀 더 확장시키자면, 나는 야구인으로서의 표준적인 삶, 야구인으로서 기본적인 삶, 그리고 야구를 꿈꾸고 사랑하는 후배에게 모델이 되는, 그런 원칙적인 삶을 꿈꾼다. 구차한 삶보다는 솔직한 삶. 여기저기 기웃대기보다는 야구인으로서 야구공 하나만을 쳐다보고 그라운드에서 아름답게 땀 흘리며 함께 뛰는 삶. 이것이 내 인생의 원칙이다. 그래서 나는 마지막까지 야구인으로 살다 야구인으로서 떠날 것이다.
 
* 결론적으로 나는 '원칙적인 사람'이 되고 싶다. '원칙적인 야구인'이고 싶다. 때론 원칙이 나를 지나치게 속박할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야구인으로서 원칙을 지키고, 원칙이라는 과정 속에서 살아가는, 지극히 원칙적인 인간이고 싶다. 이것이 내 좌우명의 핵심인 '원칙'이다.
=== 5. 스스로를 버려야 한다 ===
 
* 과거에서 깨어나지 못하는 이가 있고, 미래를 사는 이가 있다. 물론 과거는 소중하다. 하지만 과거의 자신에 안주해서는 안 된다. 끊임없이 미래를 향해 달려야 한다.
 
* 이기는 것은 습관이다. - 빈스 롬바르디, 전설적인 미식축구 감독
 
* 야구는 전쟁이다. 반드시 이기는 삼성을 만들겠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과거의 우리를 스스로 부정해야 한다. 스스로를 버려야 한다. 스스로를 이겨내야 한다.
 
* 절대 과거의 월계관에 기대지 마라. 깔고 앉은 월계수 잎보다 더 빨리 시드는 것은 없다. - 메리 케이 애쉬, 메리 케이 화장품 창업자
 
* 성공의 법칙은 반드시 배반한다. - 피터 드러커
 
* 과거에 안주하는 자는 결코 성공할 수 없다. 상대 타자가 변하고 있는데, 나만 구태의연하게 과거의 습관을 유지한다면 결과는 너무나 뻔하지 않겠는가.
 
* 나는 한국을 대표하는 사타라는 명예에 사로잡혀, 그 무게를 견뎌 내지 못하고 무너진 적이 있다. 일본 야구의 분석력과 나를 교정하려는 코칭 시스템에 대해 반발하고 훈련을 거부한 적도 있다. 그것이 얼마나 잘못되었고, 나 자신을 버리는 데서 새롭게 출발해야 한다는 것을 알 때까지 너무나 많은 시간을 소비했다.
 
* 자기를 넘어서는 일이건 자기를 부정하는 일이건, 이 모두는 자신에 대한 이해가 전제된다. 자신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가 있어야 한다. 다른 한편, 자신에 대한 준엄한 자존심이 있어야 한다. 자기 믿음이요, 자기 확신이다. 진정한 자아에 대한 믿음이 전제될 때 자기를 부정할 수 있고 자기를 넘어설 수도 있다.
 
==== - 나의 좌우명, ‘순리’ ====
 
* 나의 좌우명은 앞 장에서 다룬 대로 '원칙'과 '순리'다. 원칙은 자칫 경직되어 보인다. 엄격해 보인다. 그럴 수 있을 것이다. 원칙은 근본이고 뿌리이기 때문이다. 순리는 마치 물 흐르는 것과 같다. 유연하다. 자연스럽다. 부드럽다. 이런 강함과 부드러움의 조화, 엄격함과 유연성의 조합이야말로 내 인생이길 바란다. 그래서 원칙 못지않게 순리가 나의 좌우명 중 하나가 되는 것이다.
 
* 스타의 삶은 자칫 위험하다. 스스로에게 엄격하고 겸손하지 않으면 위험할 수 있다. 어린 시절 선배나 멘토들은 나를 늘 염려했다. 혹시라도 내가 자만심에 빠지거나 빗나갈까 봐 늘 걱정해 주고 스스로 경계하게 만들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런 지도들이 오늘의 나를 지탱해 주었다.
 
=== 6. 플랜 B를 세워라 ===
 
* 책은 야구가 '실패와 함께하는' 게임이라고 단언한다. 우승을 거둔 팀은 1년에 60~70경기를 패하게 되어 있다. 연봉이 1,000만 달러가 넘는 데다 야구의 명예에 전당에 진입한 위대한 타자들은 10번 배트를 휘두를 때마다 6~7번 실패한다. 야구의 가장 냉혹한 의미는 승리가 아닌 실패에 있다. 실패를 어떻게 대하고 받아들이고 이해하며 대처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실패와 어울려 살아가는지가 관건이다. - <마르케스의 서재에서> 탕누어
 
* 야구야말로 "실패를 용인하는 최고의 스포츠"다. 실패에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되는 스포츠다. 그렇다고 실패가 습관이 되어서는 안 된다 야구인이라면 승리가 습관이 되어야 한다. 야구인이라면 실패를 줄이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실패를 극복할 때 비로소 훌륭한 팀으로 다시 태어난다. 플랜은 단지 감독의 것만이 아니다. 선수도 늘 플랜 B를 고민해야 한다.
 
* 야구는 사람이 10번 중 3번만 성공하고도 좋은 연주자로 여겨질 수 있는 유일한 분야다. - 테드 윌리엄스, 20세기 최후의 4할 타자
 
==== - 지키는 야구론 ====
 
* 공격을 잘하는 팀은 승리하지만, 수비를 잘하는 팀은 우승한다. - NBA 격언
 
* 농담이 아니라 투수는 '맞는' 직업이다. 때로는 맞아 주는 직업이다. 대신 타자의 생각을 역이용할 줄 아는 지혜가 있어야 한다. 투수 출신 루 버데트의 멋진 말이 있다. "나는 타자의 굶주림을 먹고 산다." 투수는 땅볼을 의도하고, 배트에 맞춰 주고, 땅볼을 얻어 낸다. 그랬을 때는 투수가 원했던 더블 플레이를 얻어 낼 수 있다. 그래서 투수는 맞는 것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역으로 맞는 것을 즐길 줄도 알아야 한다.
 
=== 7. 경쟁이 스승, 최동원론 ===
 
* "쇠는 쇠로 다듬어지고, 사람은 이웃의 얼굴로 다듬어진다. (잠언 27장 17절)"라는 성경 말씀이 있다. 최 선배 때문에 야구 선수로서의 나의 정체성이 확립될 수 있었다. 다시 한번 머리 숙인다.
 
* "흘러가 버린 과거에 매달리지 않고 아직 결정되지 않은 미래를 향해 걸어갔다. 알고 보니 적은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었다. 나는 내게 거추장스러운 것은 깡그리 쓸어 버렸다. 나를 극복하자 나는 칭기즈 칸이 되었다."
 
* "동열아, 감독이 시킨다고 무조건 따라 하다가 몸이 망가질 수 있으니까, 늘 네 생각을 가지고 잘 판단해서 훈련하고 등판해라." 지금 생각해 보면 당시 나에게 딱 맞는 탁월한 조언이었다. 그때는 선수를 '관리'한다는 생각 자체가 없던 시절이었다. 감독이 시키면 언제라도 마운드에 올라야 했다. 눈앞의 승부가 전부였다. 선배는 선배였다. 조심스럽게 나를 염려했던 것이다. 그러곤 늘 반복했던 말. "러닝 많이 해라. 러닝이 중요하더라." 이런 선배였다.
 
==== - 내가 존경했던 선수들 ====
 
=== 8. 감독의 리더십, 원칙과 순리Ⅰ ===
==== - 내가 존경했던 감독들 ① ====
=== 9. 감독의 리더십, 원칙과 순리Ⅱ ===  * 감독은 최고경영자(CEO)다. 감독은 코칭스태프에 대한 구성, 선수단에 대한 구성, 선수의 선발과 운용 등 구단의 핵심 의사를 결정하는 최고경영자다. 팀의 리빌딩에서 시작해 미래 비전과 팀 운영에 대한 분명한 방향성을 제시할 수 있는 경영자가 되어야 한다. 권한의 위임과 역할 분담, 조정 능력도 필요하다. * 감독은 미디어다. 감독이 경기만 이기면 좋았던 시대는 끝이 났다. (중략) 미국 감독도 고통이듯 우리 감독들도 매일 경기 전 더그아웃에서 기자들과 방담을 나누고 경기 후에는 총평을 해야 한다. 감독 자신이 곧 대변인 격이다. 매일 뉴스를 만들어 내고, 메시지를 전달해야 한다. 물론 승패가 중요하지만, 여론과 언론에 대한 대응 능력이 승패를 뛰어넘어 팀에 대한 이미지를 좌우한다. 이 부분에 대한 준비가 필요하다. * 일본의 전설이자 메이저리그의 전설이 된 스즈키 이치로는 1991년 드래프트에서 전체 순위 41번째로, 오릭스 순위로는 4번째로 선택됐다. 그런데 다들 잊고 있는 것 중의 하나가 그때의 이치로는 타자가 아닌 투수로 선발됐다는 것이다. 1992년 전반기 내내 이치로는 2군에 머무르며 투수로 공을 던졌다. 도리어 눈 밝은 당시 감독 도이쇼조는 이치로에게서 타자로서의 본능을 발견한다. * 감독은 일희일비해서는 안 된다. 때로는 포커페이스가 되어야 한다.
==== - 내가 존경했던 감독들 ② ====
=== 1. 형 몫까지 뛰어라, 최고가 되어라 ===
=== 2. 국정감사장에 서다 ===
=== 3. 나는 뉴욕 양키스로 간다 ===  * 야구가 야구인들끼리만의 스포츠이던 시절도 지나갔다. 다른 스포츠 분야와도 교류와 협력이 필요하지만, 스포츠를 넘어선 여타 학문 간의 학제 간 연구가 필요하다. 경험만으로 야구를 하던 시절에는 야구인들끼리 함께 모여서 공부하고 정보를 교환하면 충분했다. 야구인들끼리의 만남도 중요하지만, 인접 분야의 학문을 하는 학자들과도 만나고 토론하고 공부해야 한다. 경험과 이론을 서로 공유해야 한다.  * (중략) 일단 연구 결과를 살펴보자면, 큰 아들은 한 번도 없었다. 둘째에서 넷째 아들이 매년 도루왕을 차지했던 것이다. 우리도 이런 연구가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이런 연구는 KBO 통계자료들을 완전히 공개하는 데서 출발한다. 그리고 현장은 도리어 이런 경험들을 학자들에게 제공하고 분석해 달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 야구는 이미 스포츠라는 학문을 넘어 의학, 생리학, 경제학, 통계학, 수학의 영역으로 퍼져 나가고 있다. 칸막이 학문, 칸막이 스포츠를 하던 시대는 이미 지났다. 현장에서는 농구에서도 배워야 하고, 축구에서도 배워야 한다. <nowiki>세이버메트릭스(sebermetrics)는 1971년 8월 밥 데이비스가 창시한 SABR(The Society for American Baseball Research)라는 모임에서 만들어진, 야구를 통계학적/수학적으로 분석하는 방법론이다. 세이버메트릭스는 빌 제임스가 창시한 이래로 수많은 변화를 겪어왔으며, 이제는 단순한 개인의 취미 차원을 넘어서 야구 전반에서 쓰이고 있을 만큼 널리 퍼져 있다. - 출처: 위키피디아</nowiki> === 4. 야구 개혁론Ⅰ― 아마야구를 바꿔라 ===  * 슬픔도 노여움도 없이 살아가는 자는 조국을 사랑하고 있지 않다. - 러시아 시인 네크라소프 * 한국의 고등학교 야구팀은 80개다. 일본은 4,000여 개다. 한국에는 실업팀이 한 팀도 없다. 일본은 100여 개다. 거기다 일본에는 실업야구 수준으로 운영되는 클럽팀만 260여 개 정도가 있다. 우리나라에서 '사회인 야구팀'이라고 불리는 동호인 야구팀은 200만 개에 달한다.(우리나라의 사회인 야구팀은 순수한 취미 활동 수준의 동호인 팀이다. 일본의 사회인 야구팀은 직업 야구 선수들이다. 야구를 직업 삼아 월급을 받는다. 과거 우리나라의 은행팀이나 한국화장품, 한국전력팀을 떠올리면 된다. 일본 사회인 야구 선수들은 언제든지 프로에 스카우트되기도 한다.) <nowiki>200만 개는 오기로 보인다. 2018년 기준 약 3만개 팀, 50만명이 사회인야구팀으로 활동하고 있다고 한다. (출처: http://www.hani.co.kr/arti/sports/baseball/871904.html)</nowiki> * 셋쨰, 올림픽조직위원회(IOC)보다 더 커다란 조직인 국제축구연맹(FIFA)을 배울 필요가 있다. FIFA는 지도자 자격증을 등급별로 분류한다. (중략) FIFA의 자격증 제도를 학습하면 된다. 그래서 어린이를 지도할 수 있는 자격증, 아마야구를, 대학 야구를, 프로를 지도할 수 있는 자격증 등으로 정비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이제 경험만 가지고 감독이 되는 시대는 지났다. * MLB는 학교 야구 프로그램을 만들어 보급 중이다. 수백 개가 넘는 초등학교와 협약을 맺고, 체육 시간에 가서 야구를 지도하고 홍보한다. 2008년 시작된 이 프로그램을 'Play Ball'이라고 하는데, 500만 명이 넘는 아이들이 수혜자가 됐다. === 5. 야구 개혁론Ⅱ― KBO를 바꿔라 ===  * 프로야구가 출범한 것이 1982년, 올해가 2019년이니 38년쨰다. 인생으로 따지면 이제 중년을 향해 간다. * 메이저리그에는 'MLB.com'이 있다. 메이저리그 30개 구단의 통합 마케팅 플랫폼이자 메이저리그 베이스볼의 공식 웹사이트다. 이 사이트는 야구 관련 모든 정보, 뉴스, 통계, 칼럼 등을 제공한다. 'MLB.tv'는 메이저리그 베이스볼의 경기를 볼 수 있는 인터넷 텔레비전이다. 한마디로 메이저리그에 대한 모든 정보와 미디어가 모두 종합되어 있다. 이걸 벤치마킹하면 된다. 'MLB.com'을 정확히 배우면 된다. '한국화'시키면 된다. * 야구는 기록의 스포츠다. 미국 메이저리그 기사를 볼 때마다 놀랄 때가 있다. 어떻게든 기록을 만들어 내고 수많은 기록을 재생산해 낸다. 그리고 가치를 부여한다. <nowiki>기록은 역사를 만드는 첫 걸음이다. 기록을 통해 사람은 자신의 삶을 반추하며 성장할 수 있다. 나 또한 내 삶의 다양한 일을 기록해야 한다. 기록하지 않으면 발전이 없다. 오해하고 미화한다. 말도 안되는 행복회로만 돌린다.</nowiki> * 기록은 철저히 기록되어야 한다. 그리고 공개되어야 한다. 그리고 야구를 사랑하는 모든 이들, 학제 간 연구를 통해 수학자, 통계학자, 경제학자, 과학자, 엔지니어, 의학자들이 맘껏 분류하고 거기서 가치를 발견하도록 도와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KBO가 할 일이다. 기록의 인프라를 제대로 깔아 두고, 맘껏 그 정보를 활용하도록 해야 한다. 
=== 6. 야구의 국제화, 어떻게 할 것인가 ===
=== 7. 야구공 실밥은 108개였다 ===  * 미국 프로야구에는 '야고(glue)' 선수라는 개념이 있다. 아교와 같은 접착제처럼 팀을 끈끈하게 단합시키는 선수다. 주장과는 다른 개념이다. * 돌이켜 보면 나는 한때 호남의 자부심이었다. 호남 야구의 희망이었다. 호남은 정말 야구를 사랑하는 도시였다. 1980년, 광주는 암울했고, 고통스러운 시대였다. 그럼에도 바른 역사를 살아간다는, 민주화 운동의 성지라는 굳건한 자부심으로 살아가는 시민들이 있었다. 이들은 해태 타이거즈와 함께 슬픔과 기쁨을 나눴고, 내 공 하나하나에 탄식과 탄성을 교차시켰다. 경기가 끝나 갈 무렵이면 관중들은 '목포의 눈물'을 합창했다. 모두를 위한 응원가요, 서로에 대한 위로였다. * 해태 타이거즈 시절 내내 등 뒤에는 광주와 호남이 있었다. 어느 구장에 가건, 지역을 떠나 호남 야구를 사랑하는 팬들이 있었다. 이건 지역주의가 아니다. 야구에 대한 사랑의 이야기다. 그래서 그분들의 특별한 사랑, 과분한 사랑에 대해 감사 인사를 드려야 한다. 나는 이들의 사랑을 기억해야 하고, 기록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믿는다.
== 맺음말 | ‘홈(HOME)’을 바라보며 ==
 
* 나는 야구를 모른다. 잘 모르겠다. 전 메이저리그 투수 호아킨 안두하르도 비슷한 말을 한 적이 있다. "알 길이 없다." 다만, 분명한 건 한 가지 있다. "야구는 희생의 스포츠"라는 것. 이는 나의 경험에서 비롯된다. 나는 누군가의 희생을 딛고 여기까지 왔다. 누군가의 희생번트로, 누군가의 희생플라이로 나는 한 루, 한 루를 진루해 이제 한국 나이로 곧 환갑을 맞이한다. 나는 홈인해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적이 많다. 하지만 나를 위해 조용히 희생번트나 희생플레이를 날렸던 이들은 채 1루를 밟지 못하고 더그아웃으로 돌아갔다.
 
* 돌아가신 아버지는 나를 위해 희생번트를 대고, 희생플라이를 날렸다. 그래서 내가 홈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나는 아버지와 어머니처럼 나의 아들과 딸을 위해 그렇게 희생했을까. 반대로 아들이 나를 위한 희생번트를 대고, 희생플라이를 날린 셈이 됐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의 아들의 희생에 대해 늘 고맙고도 미안하게 생각한다.
 
* 지금도 네게 미안하고 고통스러운 일 중 하나는 언젠가 프로 구단 감독을 그만둘 때, 너한테까지 안 좋은 문자들이 날아들고, 네가 상처를 받았던 그때의 일들이다. - 선동열 선수가 딸 민정의 결혼식을 앞두고 쓴 편지에서
 
== 감사의 말 ==
 
* 야구에 대한 사랑, 그리고 모든 점에서 부족한 나에 대한 배려와 나눔들이 모여 한 권의 책이 되었다. 이로써 또다시 갚아야 할 빚은 늘어 가고, 좀 더 열심히 살아야 할 동기 또한 커지게 됐다.
[[분류:2020년]]
[[분류:2020년 2분기]]
[[분류:2020년 상반기]]
 
[[분류:라이언양이 읽은 2020년 도서]]
[[분류:민음인]]
[[분류: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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