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는 선동열(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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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언양 (토론 | 기여)님의 2020년 4월 26일 (일) 10:57 판 (8. 메이저리그에 가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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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머리말 | 나는 오늘도 마운드에 오른다

저는 국보 투수가 못됩니다. 물론 화려했던 시절도 있었지만, (일본 진출은) 영광만큼이나 고통과 상처의 시절이었습니다. 일본 진출 첫해의 처절한 실패와 좌절은 지금 회고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저는 러닝에서부터 시작하여 기본으로 돌아가 다시 되돌아왔습니다. 일본 진출 4년 차에는 마짗ㅁ내 리그 우승 트로피를 들었고, 헹가래 투수의 영예를 안기도 했습니다. 정상에서 바닥으로, 다시 정상으로 되돌아갔던 과정, 그리고 꿈의 리그라는 메이저리그 진출의 못다 이룬 꿈들을 진실되게 적었습니다.

2 제1부 나는 국보가 아니다

2.1 1. 처절한 추락

  • 경기 결과도 좋지 않고, 부진에 대한 제대로 된 원인도 찾아내지 못했으며, 또 던지는 공마다 족족 맞아 나가게 되면서 나는 심리적으로 황폐해져 갔다. 처음에는 자신감 있게 덤볐다. 하지만 점점 마운드에 오르는 것 자체가 무섭고 싫었다. 야구가 그토록 무섭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야구장에 나가는 것이 그렇게 두려운 일이 수 없었다. 유니폼을 입는 것이 무서웠다. 심지어는 유니폼을 입을 때 제발 오늘 경기에 나가지 말게 해 달라고 기도하기까지도 했다. 일평생 야구만을 해 오면서 정말이지 단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엄청난 좌절이었다.
  • 지금에 와서 냉정하게 돌이켜 보면 솔직히 나는 준비가 부족했다. 한편으론 오만했다. 일본 야구를 잘 몰랐고, 한국에서의 성취에 도취 돼 있었다. 그야말로 우물 안 개구리였다. 세계 무대에서 통했고, 한국 무대를 지배하다 보니 어느 순간 나는 노력과 전진을 멈추고 그저 그런 평범한 야구 선수로 전락해 있었던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새로운 환경의, 새로운 야구에 적응하기에는 모든 점에서 준비가 부족했다. 한마디로 건방졌었다.

2.2 2. 교육리그에서 출발하다

2.3 3. 화려한 재기

2.4 4. 헹가래 투수가 되다

  • 나에 대한 재평가는 한국 야구에 대한 재평가로 이어졌다. 한국 선수들을 스카우트해야겠다는 흐름으로 이어졌다.
모든 길은 처음에 어떤 한 사람이 만든다. 일본 야구에 한국이 진출하는 길은 선동열 선수가 만들었다. 

2.5 5. 한국의 국보 투수

  • 돌이켜 보면 나의 야구 인생은 늘 그러했다. 프로야구 첫 게임에서도 패전투수가 됐고, 일본에 진출해서는 첫 게임에서 블론세이브를 범했다. 초등학교 때도 나는 엘리트가 되지 못했고, 고등학교 때도 역시 그랬다. 대학교 역시 랭킹 1위로 진학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런 경험들, 나아가 '실패'의 경험들이 나의 약점을 돌아보게 했고, 그 약점은 나를 더욱 노력하게 했다. 그리고 그 노력이 오늘의 선동열을 만들었다고 감히 자부한다.

2.6 6. 선발에서 마무리로

2.7 7. 일본으로 진출하다

  • 하지만 역시 FA제도는 그때까지도 존재하지 안ㅇ핬고, 선수들에게는 일종의 '노예계약'에 가까운 '보유선수조항'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었다. 한번 프로 구단에 입단하면 평생 그 구단 소속이 되어야 하고, 구단이 동의하지 않는 이상은 해외 진출이나 국내 트레이드조차도 불가능한, 지금 생각하면 악법 중의 악법이었다. 그래서 미국 진출이 어려웠던 것처럼 일본 진출 또한 쉽지 않겠다는 생각은 늘 하고 살았다. 그럼에도 어느 순간부터인가 좀 더 넓은 리그에 가서 좀 더 모험적으로 나를 시험해 보고 싶고,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서서히 강해지고만 있었다.
  • 내 인생의 플랜 A는 메이저리그였다. 하지만 1980년대 당시 군부독재와 정보정치의 가혹한 현실, 한국 남자라면 당연히 이행해야 하는 병역 의무, 거기다 광주민주화운동으로 상처 입은 고향 시민들의 아픔과 슬픔을 달래야 하는 여러 현실이 끝내 나를 플랜 A로 이끌지 못했다. 그래도 나에겐 플랜 B가 남아 있었다. 일본 프로야구 진출이었다. 플랜 A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플랜 B라는 기쁨과 영광이 드디어 내게 안겨진 것이었다. 정말 기뻤고 영광이었다.

2.8 8. 메이저리그에 가고 싶었다

  • 사실 조별리그 때부터 메이저리그 스카우터들의 관심이 집중되기 시작했다. 결승에서 미국을 제압하고 나서부터는 매우 적극적이었다. 뉴욕 양키스가 가장 열심히 접촉해 왔다. 밀워키 브루어스, LA 다저스, 토론토 블루제이스 등도 그랬다. 그때는 에이전트도 없었고, 한국 야구협회 시스템상으로 이 부분을 지원해 줄 만한 형편이 되지 못했다. (중략) "대한민국 남자라면 누구나 군대에 가야 한다. 그런데 나는 아직 병역 의무를 이행하지 않았기 때문에 해외 진출은 생각하기조차 어렵다. 군대 다녀와서 나중에 상의하자. 다만 나는 메이저리그에서 꼭 뛰어보고 싶다."
  • 우승 이후 대학으로 복귀했고, 지루한 합숙 생활이 다시 시작됐다. 그해 9월 하순경으로 기억한다. 메이저리그 밀워키 브루어스 구단 관계자가 당시 부모님이 살고 계시던 광주 송정리 집까지 찾아왔다. 한국신 전통 안방에서 우리 식의 양반다리를 하고 손님을 맞이했다. 나도 그 자리에 함께했다. 밀워키 관계자들은 자신들이 어떻게 나를 도와줄 수 있는지 부모님을 설득하려 했다. 하지만 대답은 마찬가지였다. 아버지가 말씀하셨다. "군대 문제를 먼저 해결해야 합니다. 그다음 상의합시다. 나는 우리 아들을 꼭 미국에 보내고 싶소. 그리고 우리 아들 생각도 그러하오."
  • 1981년의 세계청소년대회, 1982년 세계선수권대회의 성적을 기억하는, 나와 접촉의 끈을 놓지 않고 있던 스카우터들이 이번에도 몰려들었다. 더군다나 대학 교류전이 미국에서 열리고 있었기에 그들의 접촉은 상당했다. 구단 관계자들이 한국인 통역까지 데리고 와 나를 만나 설득을 시도하곤 했다. 이때쯤부터 스카우터들은 한국에서의 나의 형편을 이해하고 있었다. "우린 정말 당신과 함께하기를 원한다. 그런데 병역 의무는 어떻게 하느냐?"라는 식으로 구체적인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도 그럼에도 나에 대한 관심과 스카우팅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늘 확인해 주었고, 이는 내게 자부심이자 '선동열 야구'의 원천이 되었다.
박찬호 선수가 메이저 리그에 갈 수 있었던 이유는 분명 박찬호 선수 자신의 뛰어난 능력 때문도 있었겠지만, 메이저 리그 스카우터들에게 한국을 주목하게 만든 선동열 선수의 영향도 없다고는 말하기 어렵지 않을까? 위 글을 읽으면서 선동열 선수와 부모님들이 '너무 멀리 생각했던 거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겨우 책 몇 줄을 읽고 왈가왈부 할 수 없고, <9. 정보정치와 메이저리그의 불발>을 통해 어느정도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그 때 사회 분위기를 나는 잘 모르니까 이렇게 단순한 생각을 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일어나지 않은 미래의 일을 걱정하고, 그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기를 기다리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미국에 가서 살면서 일한다고 가정해보자. 영어를 준비해서 간다고 할 때, 절대 완벽히 준비해서 갈 수 없다. 최선의 준비를 해야겠지만, 결국에는 가서 부딪히며 배워야 한다. 군대 문제를 잠시 미뤄두고, '일단 가서 성적이 좋았다면 국민정서 상 군면제 등 여러 가지 이야기가 나올수도 있지 않았을까'라는 뇌피셜을 적어보았다.

2.9 9. 정보정치와 메이저리그의 불발

2.10 10. 최초의 국가대표 전임 감독

3 제2부 선동열의 9회말 리더십

3.1 1. 성찰하라

3.2 2. 기본으로 돌아가라Ⅰ― 러닝

3.2.1 - 아마 투수 육성 5단계론

3.3 3. 기본으로 돌아가라Ⅱ ― 롱토스, 스텝앤스로, 밸런스

3.3.1 - 프로 투수 교정 3단계론

3.4 4. 결단하라, 투수 교체 한 박자론

3.4.1 - 나의 좌우명, ‘원칙’

3.5 5. 스스로를 버려야 한다

3.5.1 - 나의 좌우명, ‘순리’

3.6 6. 플랜 B를 세워라

3.6.1 - 지키는 야구론

3.7 7. 경쟁이 스승, 최동원론

3.7.1 - 내가 존경했던 선수들

3.8 8. 감독의 리더십, 원칙과 순리Ⅰ

3.8.1 - 내가 존경했던 감독들 ①

3.9 9. 감독의 리더십, 원칙과 순리Ⅱ

3.9.1 - 내가 존경했던 감독들 ②

4 제3부 나는 연장전을 기다린다

4.1 1. 형 몫까지 뛰어라, 최고가 되어라

4.2 2. 국정감사장에 서다

4.3 3. 나는 뉴욕 양키스로 간다

4.4 4. 야구 개혁론Ⅰ― 아마야구를 바꿔라

4.5 5. 야구 개혁론Ⅱ― KBO를 바꿔라

4.6 6. 야구의 국제화, 어떻게 할 것인가

4.7 7. 야구공 실밥은 108개였다

5 맺음말 | ‘홈(HOME)’을 바라보며

6 감사의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