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기를 말하다(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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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언양 (토론 | 기여)님의 2020년 7월 8일 (수) 22:55 판 (좋은 걸 좋다고 말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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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문 -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말귀가 트이’고 ‘말문이 막히’듯, 말은 드나드는 속성을 지녔다. 나온 말은 ‘펀치 라인’이 되어 강력한 힘을 발휘하기도 하고, 주워 담을 수 없는 ‘말실수’가 되기도 한다. 나오지 않은 말은 가슴에 남아 한 사람의 신념이 되기도, 평생의 한이 되기도 한다. 지금 내겐 갑작스럽게 떠난 둘째 고양이 고로에게 미처 전하지 못한 말이 가슴에 남아 있다. 남은 말은 오히려 그를 그리는 구심점이 되니 말의 작용이 이토록 신묘하다. 수어를 포함하여, 말은 인간됨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이고 서로에게 가닿게 하는 소중한 기술이다. 그럼에도 우리 대부분이 한 번도 배우지 못했고 깊이 생각해보지 않았던 분야다. 이 책은 말하기라는 거대한 세계를 탐색하는 작지만 중요한 열쇠가 될 것이다. - 8쪽

2 배역과 진짜

옛날에는 학교 안의 활달한 나와 학교 밖의 주눅든 나 중에서 나만은 진짜 나를 알고 있다고 여겼지만, 이제는 정말로 잘 모르겠다. 어디까지가 배역이고 어디부터가 나인지. 항상 ‘’’’인생은 레벨 업이 아니라 스펙트럼을 넓히는 것이다.’’’’라고 믿는데, 옛날의 나보다 지금의 내가 더 레벨업한 버전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옛날의 나로부터 지금의 나까지를 모두 다 품은 내가 더 스펙트럼이 넓어졌다고는 할 수 있겠다. 그리고 더 넓어진 나야말로 더 나아진 나일지도 모른다. - 30~31쪽

3 잠깐 멈춤의 기술

성우 공부를 하면서 배운 것들 가운데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포즈(pause)’ 즉 ‘잠깐 멈춤’의 중요성이었다. 말의 매력과 집중도를 높이는 것은 이 ‘잠깐 멈춤’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달려 있었다. 이것은 너무도 중요한 기술이라 이 책을 읽는 여러분도 그에 대한 생각을 해보셨으면 좋겠다. 말을 매력적으로, 힘있게 하는 사람들이 어디서 말을 끊고 다시 이어가는지를 관찰해보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특히 법정 드라마의 변론 등을 유심히 들어보면 이해가 빠를 것이다. 최근에 나는 봉준호 감독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수상 소감을 말할 때 샤론 최의 동시통역과 함께 두 언어의 호흡을 어떻게 끊고 이어가는지를 관찰하며 또 많이 배웠다. 이 기술을 잘 사용하려면 기본적으로 문장 구조를 잘 이해해야 하고 본능적인 타이밍 감각도 필요하다. 그렇지만 분명 의식적인 노력을 통해 나아질 수 있는 기술이다. - 36~37쪽


뜬금없이 성우 공부를 했던 1년은 내 직업 인생에서 ‘잠깐 멈춤’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남들이 보기엔 곁길로 샌 것 같았겠지만 내겐 무척 중요한 1년이었다. 처음 만난 내게 대뜸 성우가 되어보라고 권했던 옛날의 그분께 문득 고마운 마음이 든다. 그분이 툭 건넨 말 한마디가 씨앗이 되어 내 안으로 들어오는 바람에 나는 이제 말하기 책을 쓰는 사람까지 되었으니까. 말의 힘이 이토록 크다. - 38쪽

4 말하기 선생님들

그리고 꼭 교과과정에 있었으면 하는 것이 있다.바로 말하기다. 그때 매일매일 이런 생각을 했다. 어째서 20대 후반인 지금까지 말하기 교육을 단 한 번도 받지 않았던 거지? 이렇게나 중요한 것을. 연습하면 이렇게나 나아지는 것을. 걷기나 자전거 교육이 필요하다고 느끼는 이유는 아무 생각 없이 걷고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을 많이 마주치기 때문인데, 마찬가지로 말하기에 대해 아무 생각이 없는 사람들도 수없이 많다. 그저 말재주가 없어서, 또는 성격이 소심해서 말을 웅얼거리고 제대로 구사하지 못하는 것을 가리키는 게 아니다. 안 좋은 말하기 습관을 많이 갖고 있거나 말하기의 중요성을 전혀 인지하지 못하는 사람들에 대한 얘기다. 말하기 교육을 받기 전까지 나라고 달랐을 것 같지 않다.

(중략)

우리는 정말로 말을 별생각 없이 한다. 인간 종에게 큰 선물이기도 한, 가장 구체적이고 효율적으로 발달한 커뮤니케이션 도구인 말을 사용하는 문제에 대해 우리는 좀더 배우고 생각해야 할 것 같다. 말하기에는 발성, 속도, 억양, 크기, 높낮이, 호흡, 포즈, 어휘, 어법, 습관, 태도, 제스처 등등 수많은 요소가 복합적으로 쓰인다. 거울을 보면서 더 나은 표정을 지어보거나 매일 스킨 로션을 바르고 뾰루지가 나면 연고를 바르듯이, 말하기도 어떻게 하면 더 효율적이고 아름다워질지 고미해보거나 안 좋은 습관을 고치려고 신경을 쓰면 좋지 않을까?

(중략)

어떤 사람은 발성이 좋고, 어떤 사람은 상대를 편안하게 해준다. 어떤 사람은 너무 말이 빠르고, 어떤 사람은 자꾸 말끝을 흐린다. 이 책을 읽는 분들이라면 앞으로 방송에서든 일상에서든, 사람들의 말하기를 들으며 어떤 말소리가 좋게 들리는지, 어떤 말소리가 거슬리는지 한번 관찰해보면 좋을 것이다. 매일 거울을 들여다보는 것처럼, 그렇게만 해도 우리의 말하기는 매일 나아진다. ‘’’더 직접적인 거울을 사용하면 말하기는 비약적으로 좋아지는데, 그것은 자기 말소리를 녹음해서 들어보는 일이다.’’’ - 40~42쪽


내가 먼저 상대에게 마음을 열고 매너를 갖추어 말을 걸면 상대 또한 잠시나마 자신의 세계를 내게 보여주었다.나는 그러부터 반년 동안 아르헨티나, 칠레, 페루, 볼리비아, 브라질, 모로코, 스페인을 거쳤다. 인도인 비즈니스맨 아저씨를 필두로 수없이 많은 사람에게 말을 걸었다. 이때 언어가 통하느냐 아니냐는 부차적인 문제다. 중요한 것은 상대에게 마음을 열려는 태도다. 미리 재단하려는 마음 없이. 여기서 세계를 파악하려는 두 태도의 차이를 읽을 수 있다. 즉 세계를 화분들의 집합으로 파악하느냐, 아니면 하나의 거대한 숲으로 이해하느냐. 좁은 화분을 벗어나 울창한 숲으로 나아가려면 우선 내 마음이라는 화분부터 깨버려야 할 것이다.먼저 말을 거는 사람이 된다는 건 내게 그런 의미였다. - 53~54쪽

5 <세바시> 강연록 - 힘들 때 힘을 빼면 힘이 생긴다


저는최선을 다해서 인생을 살라고 하는 말에 반대하지 않습니다. 저 또한 최선을 다해서 살고 있어요. 근데 그 최선을 달리고 또 달리고 쉴새없이 달리는 게 아니에요. 저의 최선은, 최선을 다해서 쫓기는 마음 없이 쉴 때도 있고요. 최선을 다해서 게으름을 부리면서 힘을 비축할 때도 있고요. 최선을 다해서 남의 것이 아닌 내 인생을 살려고 질문을 던질 때도 있고요. 물론 최선을 다해서 달릴 때도 있지만 최선을 다해서 맥주를 마실 때도 있습니다. - 78~79쪽

6 <책읽아웃>을 시작하다

나는 ‘하면 된다’는 말은 싫어하지만 ‘하면 는다’는 말은 좋아한다.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은 없으니까 일단 해보면 조금은 늘것이다. 그리고 해봐야만 ‘아, 이 분야는 나랑 정말 안 맞는구나’하고 판단이라도 할 수 있을 것 아닌가. 지레 겁먹기보다는 해보기나 하자 싶었다. - 94쪽

7 내 목소리가 이렇다고?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 자신이다.모두가 자기중심적으로 행동하고 사고한다. 아무리 이타적이고 겸손한 사람이라 해도 두뇌의 저 깊숙한 곳에서는 자신의 생존을 최우선으로 둔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 객관화에는 노력이 필요하다. 여러 사람과 함께 프로젝트를 수행해도 내가 한 몫이 더 커 보인다. 나는 내가 한 부분의 모든 디테일과 그에 들인 시간과 매 순간의 판단 과정을 전부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남이 한 부분에 대해서 더 열심히 보려는 노력을 해야만 비로소 형평에 맞는다. - 100쪽


동거생활에 혜안이 있는 사람들은 ‘손해보는 듯 살아라’고 충고한다. 정말 맞는 말이다.집안일에서도 마찬가지로 내가 한 몫이 더 커 보이는 착시현상이 일어나기 때문에, 내가 조금 손해보는 듯해야 비로소 각자의 기여도가 비슷해질 확률이 커진다. 이렇게 자기 객관화에는 노력이 필요하고, 스스로의 좌표와 능력을 객관적으로 파악해야 다른 이들과 협력할 때 정확한 조율이 가능하다. - 101쪽


쉽지 않은 일이지만, 어색한 느낌을 이기고 나의 목소리와 말투, 대화 내용을 그야말로 ‘남 말하듯이’ 들어야 한다. 앞서 다른 사람들을 교사로 활용할 수 있다고 한 것처럼 나의 말하기에서도 장점과 단점을 객관적으로 파악해야 한다. 예전에 성우 수업을 할 때 나의 연기나 내레이션을 처음 녹음해서 들어보고는 충격을 받았었다. 이렇게 들리겠지 하고 예상한 것과 전혀 달랐다. ‘’’말하기는 나에서 완성되지 않고 듣는 사람의 귀에서 완성되므로 계속해서 들어보고 자신에게 피드백을 주어야 한다.’’’ 나의 경우엔 <책읽아웃> 모니터링이 규칙적으로 그런 경험을 쌓아주었다. 특히 내가 그 회차를 잘 진행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 때면 다시 듣기가 더욱 부끄럽고 괴롭지만, 억지로라도 들어야 했다. 그것은 거울을 보는 것과도 같았다. 내게 어떤 말습관이 있는지 체크했다. - 105쪽


아침저녁으로 세수하고 스킨 로션 바를 때 거울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안색이나 표정을 체크하듯이 자신의 말하기를 다시 듣는 습관을 들이면 자연스럽게 문제를 발견하고 개선해나갈 수 있다. 나는 주로 청소하거나 설거지할 때 블루투스 이어폰을 끼고 <책읽아웃>을 들으면서, 부끄러울 때는 갑자기 끄응 하고 신음을 내거나 “아이구 인간아...” 같은 탄식을 뱉어가며 나의 말하기를 거울에 비춰본다. 그렇게 조금씩, 내 안에서 걸어나와 대화 상대로서의 나를 객관적으로 바라본다. - 108쪽

8 양질의 대화를 위한 생각들

빌 에반스와 짐 홀의 <인터모듈레이션(Intermodulation)> 앨범


‘’’말은 내용 이전에 소리로서도 듣기에 좋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할 수 있는 한 말소리의 매력을 높이는 데에도 신경을 많이 쓴다. 말하는 속도, 발음, 음정을 조절하고 깨끗한 소리를 내기 위해 노력한다. 언젠가 내가 출연하던 라디오 프로그램의 연출이었던 MBC 신성훈 피디님이 모니터로 내 음성 파형을 보여주면서 “작가님 목소리는 위쪽이 편평하게 깎여 있어서 안정감 있고 좋은 소리예요”라고 하셨을 때 내심 무척 기뻤다. 나는 ‘연주지’니까.

‘’’또한 앞서 말했던 ‘포즈(pause)’를 잘 사용하려고 한다.’’’ 음악에서도 음표가 있으면 쉼표가 있어야 한다.적절히 쉼표를 배치하지 않으면 이야기의 집중도가 떨어지고 리듬이 잘 생겨나지 않는다. 이렇게 ‘음악으로서의 말하기’를 생각하며 듣기 좋은 팟캐스트를 만들려고 노력했기 때문인지, 육아를 하는 분들이나 혼자 작업하는 일러스트레이터 같은 분들이 ‘소리가 편안하다’ ‘거슬리는 부분이 없어서 작업할 때 좋다’ ‘계속 듣게 된다’ 같은 칭찬을 해주신다.특히 외국에 계신 분들이 모국어로 두런두런 대화 나누는 소리를 그저 듣고 싶어서 내내 음악처럼 틀어놓고 생활하신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기분이 무척 좋았다. ‘차분하고 다정한 모국어’라는 칭찬은 오래도록 잊히지 않을 것 같다. 내 목소리를 듣는 분들이 그 내용은 다 잊는다 하더라도 듣는 시간만큼은 그저 편안하고 기분좋게 음악처럼 말소리를 즐긴다면 나는 더 바랄 것이 없겠다. - 113~114쪽


사람들은 내가 팟캐스트를 진행한다고 하면 ‘말하기’를 한다고 생각한다. 아니다. ‘’’말하기 전에 우선 들어야 한다. 대화에서는 듣기가 80이고 말하기가 20이다. 잘 들어야만 잘 말할 수 있다. 잘 들어야만 미묘하게 상승하는 대화의 호흡과 리듬을 감지할 수 있고, 그것을 더 끌어올리거나 식힐 수도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잘 들어야만 ‘그 순간’에 있을 수 있다.’’’ - 114~115쪽


‘’’내게 집중하지 않으면 누구나 바로 그걸 느낀다. 누가 그런 상대에게 자신에게 소중한 것, 이를테면 진심을 꺼내놓겠는가.’’’ - 116쪽


‘에너지 뱀파이어’란 정신과 전문의 주디스 올로프가 만든 말로, 다른 사람들의 에너지를 빼앗아 자기 기력을 채우는 사람들을 일컫는다. 그분은 대화를 주고받는 게 아니라 자신의 에너지를 채우기 위해 다른 사람들을 이용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나는 ‘에너지 뱀파이어’들에게 나도 모르게 에너지를 열심히 주는 사람이므로 그들과 적당히 잘 지내는 게 도저히 안 된다.’

내가 신봉하는 책으로 <위대한 나의 발견 강점혁명>이 있다. 갤럽이 40년간 1000만 명의 사람들을 조사해 사람이 지닌 ‘강점’을 34가지 테마로 분류하고 그중 나의 강점 테마 5개를 찾아주는 책이다. 책을 사면 인터넷을 통해 스스로를 테스트할 기회가 주어지는데, 사실 책은 부록이고 이 테스트가 중요하다. 중고책을 사면 인터넷 테스트를 해볼 수가 없으므로 혹시 궁금한 분들은 참고하시기 바란다. - 117~118쪽


팟캐스트를 진행할 때면 나는 꼭 A4 용지 한 장을 준비해서 마인드맵을 작성한다. 가운데엔 초대 작가 이름을 적고, 거기서 뻗어나온 가지에는 그분의 저서들에서 기억해야겠다 싶은 것들을 써둔다. 초대된 작가님들은 내가 적재적소에서 본인의 여러 책 중 어느 부분을 인용하는 것을 놀라워하는데, 그게 다 마인드맵 덕분이다. 내가 만약 기억해둘 내용을 다 글로 써서 녹음실에 가지고 간다면 대화중에 그것을 찾기란 어려울 테고 흐름도 끊기고 말 것이다.

마인드맵은 방대한 내용도 A4 용지 한 장에 가뿐하게 기록할 수 있고 한 눈에 보기도 쉬워서 팟캐스트 진행이나 강연을 할 때 찰떡같이 도움이 된다. 마인드맵은 좌뇌와 우뇌를 동시에 활발히 사용하기 때문에 내용을 기억하는데도 유리하다. 녹음 전 백지 한 장을 꺼내놓고 꼼꼼히 마인드맵을 작성하는 과정에서 이미 내 머릿속은 명료하게 정리된다. - 126~127쪽

9 좋은 걸 좋다고 말하기

카피라이터가 하는 일의 본질은 칭찬거리 찾기다. 내가 광고할 브랜드나 제품이 다른 브랜드나 제품과 어느 면에서 다르고 더 나은가를 찾아내어 알리는 일이다. - 128쪽


유명한 카피라이터 데이비드 오길비는 이런 말을 했다. “재미없는 제품은 없다. 재미없는 카피라이터가 있을 뿐이다.” - 130쪽


‘’’이렇듯 세상 모든 것들은 어떤 프레임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나는 무언가를 기존과 다르관점에서 바라보는 일이 창의성의 영역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이나 남이 지닌 장점에서조차 기어이 단점을 찾아내 미워하곤 한다. 굳이 그럴 필요가 있을까? ‘’’나는 되도록 내가 지닌 창의성을 칭찬거리를 발견해내는 데 쓰고 싶다. 세상사에서 좋은 점을 발견하려고 노력하는 일은 결국 본인의 환경을 더 나은 것으로 여기게끔 한다.‘’’ 또 주변의 좋은 것을 찾아내 칭찬하는 일을 계속하면 좋은 것이 무럭무럭 자라날 테니 실제로도 나를 둘러싼 세상이 더 나아질 것이다. ‘’’좋은 환경 속에 나를 놓아두면 나는 거기서 에너지를 얻어 좋은 것을 더 많이 발견하고 칭찬하게 되므로 선순환이 일어난다.’’’ 내가 다니는 길가에 꽃씨를 뿌리고 비료를 주는 것과 같다. 그건 결국 나를 위한 일이 아닐까?

칭찬폭격기라는 별명이 썩 마음에 든다. 칭찬폭격은 무얼 파괴하기보다는 좋은 것을 복돋우는 일이니, 세상의 폭격이란 폭격 중에 가장 좋은 측에 들 것이다. - 131~132쪽


내가 두 달간 모임을 준비하면서 가장 신경을 많이 쓴 것은 ‘부끄럼 많은 분들도 편안히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부위기를 만든다’는 것이었다. 그를 위해 여러 아이디어가 동원되었다.

우선 공간을 통째로 빌렸다. 모임 멤버 외의 사람들에게 열린 공간보다는 아늑하게 우리끼리만 떠들 수 있는 공간이 나을 듯했다.

(중략)

둘째로 맥주와 와인을 넉넉하게 준비했다.

(중략)

셋째, 처음 만나는 분들끼리 누가 누군지 모르거나 듣고도 까먹어 눈치 게임을 하지 않게끔 이름표를 준비했다.

(중략)

넷째, 끼리끼리 뭉치지 않도록 적절한 타이밍에 한 번씩 대대적으로 자리를 바꿨다. 한 번은 가나다순으로, 한 번은 팟캐스트 출연 순서대로 자리를 바꾸어서 사람들이 잘 섞일 수 있게 했다. 모임에 온 순서대로 앉자는 의견도 나왔으나 친한 작가와 함께 온 분들이 또 나란히 앉게 될 수 있으니 친분과 무관할 수 있는 방법을 선택했다. 이때 오가면서 술잔까지 섞여버리게 될지도 모르므로 미리 매직테이프를 술잔에 붙여 본인 이름을 써두게 했다.

다섯째, 진행자인 나는 원조 낯가리머 출신으로서 내가 살면서 다닌 모임에서 불편하게 느꼈던 것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게임을 하지 않았고(서로 낯선 상태에서 게임은 대화를 방해한다), 누군가에게 술을 먹이거나 억지로 뭘 시키지 않았고, 진행자랍시고 앞에서 오래 혼자 떠들지 않았다. 이 세 가지는 직장 상사들이 술자리를 불편하게 만드는 대표적인 행동들이다. 단, 돌아가면서 모두가 자기소개하는 시간은 한차례 가졌다. 낯가림쟁이들에게 자기소개란 곤혹스러우면서도 또 우호적인 분위기 속에서는 은근히 하고 싶기도 한, 미묘한 일이다.이날 돌아가면서 한 분씩 자기소개를 할 때마다 커다란 박수가 터졌고 분위기는 자연스럽게 점점 고조되었다.

분위기가 너무 차분해지지 않도록 루돌프 뿔 모양의 반짝이 머리띠를 여러 개 준비해서 원하는 분들이 쓰게끔 했는데 곳곳에 불쑥 튀어나와 돌아다니는 그 머리띠가 보이는 것도 연말 파티 분위기를 띄우는 데 한몫했다. 모임의 분위기란 몇몇이 띄우려고 애를 쓴다고 되는 게 아니다. 모임 구성원이 자연스럽게 발화할 수 있는 판을 잘 깔아주면 그 모임만의 분위기와 흥이 조금씩 생겨난다. 작업실 시세에 대한 이야기, 망한 강연 토론회 등 실용적인 정보 공유에서부터 숨겨두었던 팬심 고백, 서로를 응원하는 다정한 말들까지 이 모임에서 오간 많은 이야기와 따뜻한 분위기는 모두에게 오래도록 큰 힘이 되지 않을까 싶다. - 134~137쪽


여러 조건이 잘 맞으면 이야기는 자연스레 생겨나고 사이를 오가게 된다. “어디, 자네도 얘기 한번 해보게” 한다고 해서 소통이 일어나는 게 결코 아니다. ‘’’빛과 온도와 습도가 잘 맞으면 흙속의 씨앗들이 너도나도 싹트듯이, 편안하고 서로에게 집중할 수 있는 조건이 갖춰지면 이야기꽃이 피어나는 것이다.’’’ ‘이야기꽃’이라는 표현이 괜히 있는 게 아니구나 싶었다. - 138~139쪽


C는 월간지 에디터다. 잡지계에서 일한 지 오래되었고 지금은 디렉터급이다. 언젠가 만나서 얘기를 나누는데 그날 아주 귀찮은 업무가 있었다고 했다. 자기가 1년 동안 뭘했는지 회사에 보고하는 평가서를 써 내는 날이라는 거였다. 아니 한 달에 한 번씩 꼬박꼬박 잡지를 내왔는데 보면 알지 않냐며 뭘 또 따로 보고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했다.나는 정색하고 말했다.

‘’’“오늘이야말로 정말로 공들여 회사에 생색을 내야 하는 날이야. 회사에 인력이 얼마나 많고 발행되는 잡지만 해도 얼마나 많은데 그걸 어필도 안 해놓고 회사에서 어련히 알아주려니 하면 안 되지. 자칫하다간 1년간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회사에서는 별다른 성과도 못 낸 사람으로 비칠수도 있다고.”’’’ - 143쪽


이 ‘쪼’가 심한 말투는 상투적이고 매력이 없다. 자연스러움보다는 관성과 습관으로 이루어진 말투다. - 151쪽


‘’’생각하지 않아도 후루룩 말이 나올 때, 그 말은 ‘닳고 닳은 말’이 되어 힘을 잃기 쉽다. 동작은 하고 또 하면 숙달되지만 말은 능숙해지기를 경계할수록 좋은 듯하다.’’’ 그게 선생님들이 말했던 ‘쪼가 생기면 안 좋다’는 말의 뜻인 것 같다. 비슷한 말을 하더라도 흐트러지거나 흘러가버리지 않도록, 말이 제 알아서 나오지 않도록, 매번 처음 전하는 말처럼 정성을 기울여야겠다. - 154쪽

10 침묵에 대하여

대화가 잘 통하는 사이는 참 소중하지만 그보다 더 좋은 것은 침묵을 나눌 수 있는 사이다. 이런 침묵은 몇몇 가깝고 특별한 사이에서 일어나는 대화의 한 형태다. 함께 나눈 수많은 대화와 함께 보낸 수많은 시간의 결과로, 우리 사이에는 실핏줄을 닮은 무언의 통로 같은 것이 생겨나있다. 적어도 서로를 오해하지 않으리라는 신뢰와, 무언가를 함께 나누려는 마음이 거기 있음을 안다. 우리보다 압도적으로 큰 것들 - 아름다움, 장엄함, 벅참, 슬픔, 일상 등등 - 앞에서 작아지는 순간들에 침묵이 깃들곤 한다.

이를테면 유독 아름다운 노을을 나란히 바라볼 때, 말은 점점 잦아들고 조금씩 침묵이 차오른다. 때로는 이 와인처럼 감미로운 침묵을 서로에게 천천히 따라주는 것도 같다. 어떤 침묵은 타르처럼 굳어가면서 벗어나고픈 압박감으로 변한다.이 침묵이 그런 종류가 아님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말을 잇지 못하는 순간은 말로 담아낼 수 없기에 찾아온다. 의미와 경계, 한 줌 언어의 납작한 정의가 사라지고 그 자리에 침묵이 촘촘히 들어찬다. 저 낮은 곳에서부터 서서히 차오른 침묵은 마침내 흐르기 시작한다. 가끔 마주치는 눈빛, 작은 한숨만으로도 충분하다. 굳지 않고 흐르는 침묵은 대화의 완벽하고 더 차원 높은 연장이다. 침묵은 상상하게 하고 우리를 겸손하게 한다. 침묵은 공이고 모든 것을 받아들이게 한다. 좋은 침묵은 각자를 고독 속에 따로 가두지 않는다. 우리는 침묵에 함께 몸을 담근 채 서로 연결된다. 동시에 침묵함으로써 비로소 서로를 돕는다. 침묵속에서 고독은 용해된다.

짧게나마 완벽한 침묵의 대화를 나눈 사람들은 은빛 실핏줄로 이어져 있다. 인생의 아름다운 순간에, 누군가했던 말은 기억 속에 새겨지지만 우리가 나눈 침묵은 심장에 새겨진다. - 167~169쪽

11 그런 것까지 굳이 말로 해야 됩니다

눈치는 아시아 문화권처럼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가 조밀하고 중요한 곳에서 발달하는 기술로, 상대방이 말을 꺼내지 않아도 그 기분이나 의도를 알아차려 전체의 조화를 해치지 않도록 하는 능력을 의미한다. - 171쪽


영어권에서는 ‘상대가 말을 못 알아들으면 그 책임이 발화자에게 있기 때문에 상대가 알아들을 때까지 몇 번이고 정확히 설명해줄 의무가 있다’는 말을 듣고는 무릎을 쳤다.

(중략)

한국말은 말하는 사람에게 책임이 있지 않고 듣는 사람에게 책임이 있다. 그리고 듣는 사람은 상대가 말하지 않는 것까지 들어야 한다. 게다가 이 책임은 주로 관계에서 지위가 낮은 사람에게만 지워진다. 그러니 내가 관계에서 높은 지위를 차지하면 나는 말하지 않아도 사람들이 ‘눈치껏’ 나의 비위를 맞추게 돈다(물론 상대가 어려워서 차마 말하지 못하는 것, 또는 나를 위해 상대가 굳이 말하지 않는 것을 알아차리는 것은 높은 차원의 능력이다. 그것은 때때로 대화와 관계를 아름답고 풍성하게 하지만 그것만으론 이루어지는 대화나 관계는 인간계에서는 불가능하다).

(중략)

‘’’내가 뭘 원하는지 콕 집어 말하지 않아도 상대가 알아채주길 바라는 마음도 어느 정도 선이 있지. 갈등으로 번질때까지 말하지 않으면 서로간에 불필요한 감정만 소모될 뿐이다.’’’

제발 말을 하자. ‘그런 것까지 굳이’ 말로 해야 한다.

(중략)

상대가 내 마음을 모른다면, 말하지 않은 나의 책임이다. 광고 삽입곡으로 널리 알려진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라는 노래는 정겹게 느껴질 때도 있지만 한국 사회에 끼치는 해악도 만만찮다. ‘’’말하지 않으면 상대는 모르다고 가정해야 제대로 된 대화가 시작된다. 그리고 상대를 자꾸만 미루어 짐작하며 발언의 숨은 의도를 캐내려고 하는 사람들은 정말 피곤하다. 상대는 당신이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만큼 납작한 세계까 아니다.’’’ 상대의 의중을 알아내려 끙끙대는 사람보다는, 하는 말을 담백하게 듣되 의아한 게 생기면 확인을 하는 사람이 나는 더 좋다. 우리, 양지에서 대화를 하자.

‘’’원하는 바를 정확히 말하는 연습만 하더라도 커뮤니케이션의 질은 훨씬 나아진다.’’’ 더욱 중요하게는 마음에 응어리가 덜 지고, 상대나 주위 사람들을 원망하지 않게 된다. 나의 경우 상대를 원망하거나 미워하는 마음이 쌓여갈 때, 그게 많이 쌓여서 덩치가 커지기 전에 상대에게 직접 말하는 연습을 했다. 대신 감정을 싣지 않고 예의를 갖춰서 말하려고 노력했다. 지금까지 그렇게 말해서 관계가 나빠진 경우는 없었고, 오히려 관계가 더 단단해졌다. 내가 그렇게 말함으로써 상대도 나 때문에 불편함을 느꼈을 때 부담없이 말할 수 있게 되어, 나 또한 대인관계에서 좋은 피드백을 얻게 되었다.

‘’’관계를 정말로 존중한다면 그에 들여야 하는 노력은 예의를 갖춰 정확히 말하려는 노력이지, 참고 또 참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내게 전자는 느슨해진 나사를 조이고 기름을 쳐서 관까 오래가게끔 정비하는 것이고, 후자는 쉽게 나올 수도 있었던 상처들을 덮고 덮어 곪게 하는 것이다. ‘’’그뿐 아니라 ‘나만 참으면 된다’는 생각은 착각일 경우가 많다. 그럴 경우 대부분 상대도 나를 참아내고 있을 것이다.‘’’ 어떻게 아냐고? 예의를 갖춰서 정확히 말을 꺼내보라. 그럼 당신도 알게 될 것이다. - 171~175쪽

12 설득은 매혹을 이기지 못한다

‘’’“그래, 세상을 이해하는 도구는 사람마다 다른 것 같아. 그게 꼭 책일 필요는 없지.”’’’ - 177쪽


광고와 브랜딩을 하면서 얻은 큰 깨달음 중 하나는 ‘설득은 매혹을 이기지 못한다’는 것이었다.’’’사람들으 그것이 옳다고 이성적으로 설득되어서 움직이기보다는 일단 매혹된 것에 이성적인 듯한 이유를 갖다붙이려는 심리가 있다.’’’ - 179쪽

13 내가 좋아하는 목소리

<코스모스>는 책과 13부작 TV 다큐멘터리가 함께 제작되었다. 엄청난 시청률을 기록했던 이 다큐멘터리에는 칼 세이건이 직접 등장해 이것저것을 안내하고 설명한다. 여기서 칼 세이건의 내레이터 역량이 폭발한다. 유튜브에서 ‘Carl Sagan Cosmos’를 찾아보면 전편을 볼 수 있고 짧은 클립들도 많다. 책 <코스모스>의 문장이 유려한 것처럼 다큐멘터리 <코스모스>의 문장도 그러한데, 이것은 칼 세이건의 목소리를 들을 때 이루 말할 수 없이 강력해진다.

(중략)

속도와 높낮이, 포즈의 사용, 리듬감 등 모든 면에서 매혹적인 말하기다. 그것이 가장 강렬하게 구현된 것이 바로 그 유명한 ‘창백한 푸른 점(Pale Blue Dot)’ 스피치일 것이다. 3분 30초가량의 내레이션을 듣는 것만으로도, 영어를 잘 알아듣지 못하더라도, 그것은 와닿고야 만다. 어떤 신념과 에너지로 둘러싸인 지성의 핵이 혜성처럼 빛나는 꼬리를 끌며 날아와 우리 마음의 벽을 부수고 들어온다(‘창백한 푸른 점’ 스피치는 유튜브에 있고 그 내용으 ㄴ위키피디아에 나와 있으므로 꼭 듣고 읽어보시기 바란다).

‘’’나는 한 사람이 지닌 말의 힘에 대해 생각할 때면 거의 항상 칼 세이건을 떠올린다. 말은 베고 부수고 찌를 수 있고 또한 적시고 스미고 이끌 수도 있다. 때로는 수많은 사람의 마음으로 침투해 영원한 변화를 만들어낼 수도 있다.’’’ - 184~185쪽


‘’’때로 목소리의 힘은 그의 온 인생으로부터 온다.’’’ - 188쪽

14 누구에게도 상처주지 않는 말들

나는 내 말이 누군가를 소외시키거나 배제하지 않도록 꽤나 열심히 노력해왔다고 생각했는데 여전히 생각지 못한 부분이 남아 있다. 사실 그것은 당연하다. 말은 생물이어서 말과 말을 둘러싼 맥락은 내가 죽는 날까지 계속해서 변화할 것이고 나는 힘닿는 한 업데이트를 계속해야 할 것이다.

(중략)

‘’’나는 21세기의 지성이란 스스로의 말이 여성, 약자, 소수자, 장애인 들을 소외시키지 않는지 점검할 수 있는 능력을 포함한다고 생각한다. 나아가서는 지구의 모든 생명과 지속 가능성을 위해 더 나은 표현을 고를 수 있는 능력도.’’’ - 190~191쪽


나의 말이 더 나은 세상을 반영하는 말이 되기를 바란다. - 193쪽

15 대화의 희열

  • <책읽아웃> 81-1번 에피소드 김원영 작가님 편

(참고) 김원영 작가님의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에서 내게 아주 인상 깊었던 표현은 ‘’’’예의바른 무관심’’’’이었다.


‘’’인터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상대를 향한 관심’’’이니까. - 197쪽


  • <책읽아웃> 85-1 김흔비 작가님 편

16 목소리를 냅시다

살다보니 어느새 ‘읽고 쓰고 듣고 말하는 사람’이 되었다. 나를 소개할 때 이 순서를 바꾸지 않는다. 읽고 나서 쓰고, 듣고 나서 말한다. 읽고 쓰기가 듣고 말하기보다 먼저 오는 것은 읽고 쓰기의 호흡이 더 느리기 때문이다. 천천히 받아들이고, 느리게 사유하고, 꼼꼼히 정리하고 나서 듣고 말하기에 나선다. 듣고 말하기는 아무리 천천히해도 즉시적이어서 실수하거나 무례를 범하기 쉽다. 어설프게 비유하자면 운전면허 필기시험에 붙고 나서 주행 연습에 들어가는 것과 같달까. - 201쪽